식곤증은 당신 탓이 아니다

식곤증은 당신 탓이 아니다

 

전공의 시절 필자는 밥 먹는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다. 할 일은 많은데, 밥을 먹고 나면 식곤증 때문에 1~2시간은 정신을 못차리게 되기 때문이다. 점심 먹고 식곤증이 오는 것뿐만 아니라, 오전 중에도 아침식사로 인한 식곤증을 자주 경험했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실제 근무시간의 1/3 정도가 식사로 인한 ‘부작용’으로 허비되고 있었다. 물론 일이 많아 수면시간이 부족했던 것이 식곤증을 증폭시킨 근본적인 이유이긴 했다. 하지만, 하루 24시간을 쪼개서 일을 해도 일은 남아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가장 큰 딜레마는 저녁식사였다. 저녁을 먹자니 왔다갔다 밥 먹는데 1시간, 식곤증에 1시간, 합해서 2시간이 휙 날아가 버려 밤늦게까지 남아서 일한다고 해도 실제 일하는 시간은 2~3시간을 넘기기가 어려웠다. 결국 취침시간은 늦어지고 식곤증과 수면부족의 악순환은 계속됐다. 그때 이후로 필자는 부작용 없이 밥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고민을 하게 됐다.

불면증에 좋다는 우유

인터넷에서 불면증에 좋은 음식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우유다. 우유에는 천연 안정제인 트립토판이라는 아미노산(단백질을 구성하는 최소단위 분자)이 풍부해 수면이 유도된다는 것이다. 우유 말고도 수면에 도움이 된다고 추천되는 음식들이 있는데, 그 음식들도 대부분 추천 이유가 트립토판이다. 물론 이보다 더 친절한 설명도 있다. 트립토판이 뇌로 들어가 행복감과 안정감을 유도하는 호르몬인 세로토닌으로 전환되고, 그로인해 수면이 유도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우유를 먹으면 수면이 유도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우유를 낮에 먹으면 어떻게 될까? 낮에도 수면이 유도되지 않을까? 혹시 이것이 식곤증과 관련 있는 것은 아닐까?

트립토판, 세로토닌 그리고 멜라토닌

그런데 뇌에서 세로토닌은 행복감과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것에 그 역할이 그치지 않는다. 뇌로 유입된 세로토닌은 멜라토닌이라는 수면유도 호르몬의 재료가 된다. 세로토닌 자체도 우리 몸을 안정시켜 수면을 유도하지만, 여기에 멜라토닌의 영향까지 추가되어 더욱 확실하게 수면이 유도되는 것이다. 그런데 세로토닌이 아무 때나 멜라토닌으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다. 멜라토닌 합성을 방해하는 강력한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햇빛이다. 우리 눈에 햇빛이 들어오면 멜라토닌 생산이 억제된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 어두워지면 그때부터 멜라토닌이 생산된다. 현대인이 충분한 햇빛을 보지 못하는 현실은 식곤증이 만연하게 된 또 다른 기본 토양이 아닐까 생각한다.

열쇠를 쥐고 있는 인슐린

그런데 혈액 중에 트립토판이 많다 하더라도 그 트립토판이 다 뇌로 들어가기는 것은 아니다. ‘혈관-뇌 관문’이라는 넘어야 할 장벽이 하나 있다. 트립토판이 이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선 다른 아미노산과 경쟁을 해야 한다. 혈중 트립토판 농도가 높다 하더라도, 경쟁하는 아미노산이 많으면 실제 관문을 통과해 뇌에 도달하는 트립토판 양은 변화가 없고, 세로토닌이나 멜라토닌의 양도 변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인슐린이 마법을 부린다. 혈중 인슐린 농도가 상승하면 세포로 혈당뿐만 아니라 트립토판과 경쟁하는 아미노산의 흡수도 증가해 단백질 합성이 증가한다. 그 결과 혈액 중에 트립토판 농도가 상대적으로 증가해 더 많은 트립토판이 뇌로 들어가게 되고, 세로토닌과 멜라토닌 농도 상승하게 된다. 물론 멜라토닌은 햇빛 노출이 없을 때 상승한다.

식곤증의 총체적 실체

이제 다시 우유로 돌아가 보자. 우유엔 상대적으로 트립토판이 많다. 게다가 인슐린을 분비하는 능력이 설탕의 60% 수준으로 높다. 뇌로 트립토판 유입을 증가시키는 최적의 조합인 것이다. 우유가 인슐린을 분비시키는 요인은 유당이나 유지방이 아니라 바로 단백질이다. 우유 단백질 중 인슐린 분비능력이 가장 큰 것은 유청 단백질인데, 루신, 이소루신, 발린 같은 짧은 사슬 아미노산(BCAA)이 이런 효과의 주요인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트립토판과 인슐린 중 어떤 것이 뇌의 세로토닌 농도에 더 결정적일까? 바로 인슐린이다. 식곤증을 유발하는 주범으로 밀가루와 설탕, 흰쌀밥 등의 정제된 탄수화물이 지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건강정보들은 정제된 탄수화물이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혈당이 급격히 떨어지고, 그로인해 기운이 떨어져 식곤증이 발생한다고 주장할 뿐이다. 하지만 전체 그림을 놓고 보면 정제탄수화물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슐린은 우유를 포함한 동물성 단백질에 의해서도 분비되고, 이들 식품은 단백질양에 비례해 트립토판과 루신과 같은 아미노산의 양도 많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식곤증을 부르는 식습관

식곤증을 부르는 최악의 조합은 아마도 흰빵에 우유 혹은 유제품이다. 흰빵 때문에 아무래도 혈당이 급격히 상승하고, 인슐린 분비도 촉진되는데, 거기에 우유를 마셔 인슐린이 추가로 분비되고, 트립토판도 보충해주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흰쌀밥에 고기, 생선, 계란 등의 동물성식품을 반찬으로 함께 먹는 것이다. 물론 식곤증을 부르는 음식조합은 상대적이다. 그 비교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좋고 나쁘고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비교기준은 현미밥과 채소반찬만 먹는 것이다.

현미밥을 먹을 때보다 백미밥이나 밀가루음식을 먹을 때 혈당이 솟구쳐 인슐린이 더 많이 분비되고, 채소반찬만을 먹을 때보다 동물성식품을 반찬으로 먹을 때 인슐린이 추가로 분비돼 결과적으로 식곤증이 더 잘 발생하게 된다. 여기에 음식을 먹을 때 물을 함께 먹는 것과 급하게 먹는 것도 식곤증을 유발하는 추가적인 요인이다.

식곤증, 집중력저하 그리고 충동성

요즘 아이들에서 ADHD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충동적인 행동이 늘고 있다고 한다. 여러 요인이 관련돼있겠지만, 필자는 먹거리가 매우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수면을 유도하는 우유를 오전에 아이들이 간식으로 먹으면 어떻게 될까? 아이들은 요즘 주로 실내에서만 생활해 직접적인 햇빛 노출도 적다. 졸음이 몰려오기 쉽다. 우유나 유제품뿐만 아니라 흰빵, 백미밥, 설탕, 유제품, 과도한 육류섭취 모두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식곤증을 유발할 수 있다. 아이들은 졸릴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집중력이 떨어지고, 쉽게 짜증을 내지 않는가?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런 음식들을 주면서 집중력이 떨어지고, 충동적인 행동을 한다고 걱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우리 스스로에게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식곤증, 그리고 집중력 저하, 피로감은 당신 탓이 아니다. 바로 당신이 먹은 음식 탓이다. ‘나는 왜 그럴까?’ 고민하지 말고, 먹는 음식을 바꾸라! 그러면 식곤증도 사라질 것이다.

+글․이의철

이의철은 채식이 건강관리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의료인 모임 ‘베지닥터’ 사무국장이다. 현재 대전에 있는 선병원 직업환경의학센터 과장으로서, ‘건강마을협동조합’의 이사로서, 현미채식을 통해 쪽방 생활인 및 노숙인들이 스스로 건강을 되찾는 <희망 건강실천단> 사업을 하면서, 일하는 사람들과 지역주민의 건강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다.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로서, 베지닥터 이사이자 사무국장이다. 현재 선병원 직업환경의학센터(대전 유성구 소재)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관련 서적으로는 공저 [채식이 답이다] , 감수 [무엇을 먹을 것인가]가 있다.

댓글 2 개

  1. 고무신 3 년 전

    공부를 한지 오래되어서 다시 공부한다는 맘으로 조금씩 책을 보고 있었는데요..
    이보다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된 책을 아직은 못봤습니다.
    저도 식곤증 때매 5년여 동안 고생을 많이했는데요…
    이유를 알고 해안을 찾으니 통쾌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아무쪼록 건강하십시오…

  2. 고무신 3 년 전

    채식을 하고 식곤증이 많이 사라졌고, 취침과 기상이 더 편해졌는데요…
    최근들어 체력보강을 위해 하드 요가를 시작했습니다. 말그대로 동작이 크고 근력이 많이 필요한 요가입니다.
    요가를 한 후에 점심 식사 후 2시간 정도 지나면 예전의 그 견딜 수 없는 혼수상태에 돌입하고 맙니다.
    혹시 운동에 의한 근육 스트레스 또는 젖산 분비와 식곤증이 연관되어 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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