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는 사람을 살리는 약이다.

현미는 사람을 살리는 약이다.

작년 말부터 ‘현미는 사람을 천천히 죽이는 독약이다’라는 글이 인터넷과 SNS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퍼지고 있는 것 같다. 현미에 대한 근거 없는 악소문들은 예전부터 많았던 터라 처음 그 글을 읽고도 일일이 대응할 필요를 못 느꼈다. 하지만, 여전히 이 글을 읽고 혼란을 겪고 있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 이제라도 현미를 둘러싼 근거 없는 주장들에 대한 진실을 알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글을 쓴다.

피트산과 미네랄

현미에 대해서는 괴소문은 주로 현미에 있는 피트산(phytic acid)이 골다공증을 유발하고 치아건강을 악화시킨다는 내용을 필두로 한다. 피트산이 칼슘, 철, 마그네슘, 아연 등과 같은 금속 이온들과 결합하는 특성이 있어, 영양소의 체내 흡수를 방해하고, 뭔가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피트산이 미네랄 흡수를 방해해 영양불균형이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은 이미 1990년대 말에 근거가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우리 몸은 섭취하는 음식의 종류, 몸의 상태 등에 따라 영양소의 흡수, 배설을 매 순간 조절하기 때문에, 설사 피트산으로 인해 일부 영양소 흡수율이 떨어지더라도 전체적인 영양 불균형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사실 미네랄 흡수를 방해하는 성분으로 주목을 받은 성분은 피트산만이 아니다. 현재 7대 영양소의 하나로 꼽히는 식이섬유도 당시에는 영양소 흡수를 방해하는 항영양소(anti-nutrient)로 인식이 됐다. 하지만 피트산이나 식이섬유는 모두 이후 연구들에선 영양소 불균형과 관련이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이번 글도 사실 연구 원문을 보기 보다는 인터넷에 떠도는 이런 저런 정보들과 신문기사들을 짜깁기한 것에 불과하다. 제대로 된 근거는 전혀 없다.

골다공증을 예방하는 피트산

위 글의 필자는 피트산이 미네랄 흡수율을 떨어뜨린다는 주장에서 더 나가 골다공증을 유발한다고까지 주장했다. 하지만 이 또한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다. 피트산은 골다공증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방한다. 2013년 유럽 영양학 저널에는 폐경기여성 157명의 소변 중 피트산 수준에 따른 골밀도 차이를 비교한 논문이 발표됐는데, 피트산 농도가 높은 사람이 골밀도도 더 높고, 골밀도 감소율도 더 낮았다. 이를 바탕으로 계산한 10년 후 고관절 골절 위험은 피트산 섭취가 많은 사람에서 50% 가량 더 낮았다.[1] 최근의 연구는 피트산이 왜 뼈 건강을 향상시키는지 그 이유를 찾는 데 집중되고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피트산이 뼈를 분해하는 파골세포 생성을 억제하고 뼈의 칼슘 흡수를 촉진하는 것이 주된 기전일 것으로 추정된다.[2] 이런 사실들은 실험적 연구에서뿐만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6만3천명의 중국인 중년 여성들을 10여 년 관찰한 결과 채소, 과일 및 통곡물 섭취가 많을수록 골절 위험이 34% 가량 낮다는 역학연구결과로도 재차 확인된다.[3] 아시아인뿐만 아니라 캐나다 중년 여성에서도 통곡물, 채소, 과일 섭취가 많을수록 골다공증 발생 위험이 감소한다는 사실이 관찰된다.[4] 현미에 피트산이 많아 골다공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은 한마디로 헛소리에 불과하다.

치아와 구강을 건강하게 만드는 현미

현미식을 시작한 후 치아를 잃었다는 안타까운 사연이 블로그를 통해 몇 년 째 회자되고 있다. 당사자 입장에선 현미식을 시작한 후 치아를 잃었으니 분명 현미 때문에 치아를 잃었다고 확신할 것이다. 하지만, 치아를 잃는 가장 큰 원인인 치주염은 치아에 본격적인 증상을 느끼기 전까지 무증상의 만성경과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치아를 둘러싸고 있는 치주골이 방사선 촬영 상 절반정도나 녹아 없어졌는데도 본인은 전혀 증상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증상을 느끼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미 이렇게 손상된 치주골은 회복되지 못하고 발치해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의 사례자도 본인은 인지하지 못하였지만 이미 치주의 염증이 상당히 진행된 상황에서 현미식을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미채식은 뼈를 튼튼하게 만들 듯이 치주골 또한 튼튼하게 만들어 치아를 건강하게 만들지만, 이미 녹아내린 치주골은 현미식으로도 어쩔 수 없다. 다만 심한 치주염으로 발치 및 임플란트 시술을 한 후에 현미채식은 염증억제 및 전신 건강상태 개선을 통해 임플란트의 수명을 연장시켜 치아건강에 도움이 된다. 위 사연의 주인공도 억울한 마음은 들겠지만, 발치 후에 다시 현미채식을 실천하는 것이 치아건강 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다.

현미는 독이 없다

또 잡초를 억제하기 위해 현미의 껍질인 쌀겨를 논에 뿌리는 것을 두고 마치 현미에 제초제같이 뭔가 생명을 위협하는 성분이 있는 듯 인상을 풍긴다. 하지만 이 또한 엄청난 왜곡이다. 그와 반대로 제초 목적으로 쌀겨를 논에 뿌리는 이유는 쌀겨가 미생물들을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미생물들이 쌀겨의 풍부한 영양성분을 먹고 증식하면, 논물의 산소 농도가 떨어지고, 탁해지는데, 그 결과 논의 잡초들은 산소와 햇빛 부족으로 죽게 되는 것이다. 쌀겨나 현미에 독이 있어서가 아니라 생명을 활성화하는 성분이 풍부하기 때문에 잡초를 억제하는 것이다.

현미는 해독식품이다

아울러 현미의 속껍질에 농약이나 중금속이 많이 잔류해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주장도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다. 현미의 식이섬유는 다른 어느 식이섬유보다 중금속이나 환경호르몬, 발암물질을 흡착해 대변으로 배설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게다가 쌀의 잔류 농약 검사는 쌀의 겉껍질이 있는 볍씨 상태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미의 잔류 농약에 대한 걱정은 더욱 할 필요가 없다. 시중에 유통되는 쌀들은 겉껍질의 농약이 기준치 미만이고, 현미는 그 겉껍질마저도 깎아낸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현미에 중금속이나 잔류농약이 백미에 비해 소량 더 있다 하더라도 총 배출되는 양이 증가해 오히려 체내 독성물질의 양은 감소하게 된다.

현미의 미미한 중금속과 농약을 걱정할 정도로 독성물질에 대한 염려가 크다면, 현미를 끊을 것이 아니라 육류, 어패류, 계란, 우유와 같은 동물성 식품을 우선 끊어야 한다. 사료 재배를 위해 살포된 대량의 제초제와 농약 등이 동물들의 근육과 젖에 농축이 되기 때문이다. 오염물질을 염려하면서 현미를 먹지 않고, 동물성 식품을 먹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다.

현미는 소화가 안되나?

현미를 먹으면 소화가 안 된다는 사람들이 있다. 평소 음식을 잘 씹지 않는 사람들이 특히 이런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먹은 음식이 소화-흡수되기 위해 소장으로 넘어가려면 직경이 1~2mm 크기로 잘게 부서져야 한다. 입에서 잘 씹어 삼키면 음식물이 위에서 십이지장으로 신속하게 넘어가지만, 입에서 제대로 씹지 않고 삼키면 위가 음식을 분쇄해서 십이지장으로 넘겨야 한다. 이렇게 위에서 음식을 분쇄하게 되면 위산도 많이 분비되고, 음식이 위에 머무는 시간도 길어지게 된다. 그 결과 식후 속이 더부룩하고, 가스가 차고, 위산에 위점막이 자극을 받아 쓰리거나 신물이 넘어오는 증상이 발생하게 된다. 물론 백미는 현미에 비해 분쇄가 쉬워 덜 씹어도 당장엔 불편한 증상이 덜할 수 있다. 하지만, 백미나 밀가루 음식도 제대로 씹지 않고 삼키면 과식, 급격한 혈당 상승, 비만, 고지혈증을 일으키고, 위에 오래 머물게 돼 속쓰림, 식도역류 등의 문제도 일으키게 된다. 때문에 현미를 먹고 속이 불편한 사람은 평소에 제대로 씹지 않는 습관 때문에 불편한 것이지 현미 때문에 불편한 것이 아니다. 현미의 껍질이 위 점막에 상처를 내 속이 불편한 것이 아니다. 현미냐 백미냐를 떠나, 무조건 천천히 꼭꼭 씹어 먹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오히려 백미일수록 더욱 의식적으로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렇게 습관이 들면 굳이 백미를 먹을 이유가 없어진다. 그래서 현미밥을 천천히 꼭꼭 씹어 먹게 되면 소화가 잘되는 것은 물론, 식곤증, 속쓰림, 비만, 식후 혈당 상승, 고지혈증 등이 사라지게 된다. 소화의 문제는 백미냐 현미냐의 문제라기보다는 평소 본인의 식습관의 문제인 것이다.

현미가 맞지 않는 체질은 없다

체질에 따라서 현미가 맞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한의사 혹은 자연의학 전문가들이 있다. 하지만 체질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현미를 먹고 소화가 안 되는 체질은 천천히 꼭꼭 씹어 먹으면 소화가 잘되는 체질로 바뀐다. 천천히 꼭꼭 씹어먹는 습관과 마찬가지로 체질 또한 당사자의 심리적 요인이나 사고방식, 처한 환경 등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물론 이런 요인들은 쉽게 바뀌지 않아 체질도 고정 불변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천천히 꼭꼭 씹어먹기를 실천해 소화기능을 바꿀 수 있듯이, 좀 더 느긋하게, 외부의 문제를 위해 본인의 건강을 뒷전으로 미루는 사고방식을 바꾸고 자신에게 집중을 하는 삶을 살기위해 노력하다보면, 이전과는 달라진 자신, 이전과 달라진 체질을 경험하게 된다. 현미가 맞는 체질과 그렇지 않은 체질은 따로 없다. 체질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1] López-González AA, Grases F, Monroy N, Marí B, Vicente-Herrero MT, Tur F, Perelló J. Protective effect of myo-inositol hexaphosphate (phytate) on bone mass loss in postmenopausal women. Eur J Nutr. 2013 Mar;52(2):717-26.

[2] Arriero Mdel M, Ramis JM, Perelló J, Monjo M. Inositol hexakisphosphate inhibits osteoclastogenesis on RAW 264.7 cells and human primary osteoclasts. PLoS One. 2012;7(8):e43187.

[3] Dai Z, Butler LM, van Dam RM, Ang LW, Yuan JM, Koh WP. Adherence to a vegetable-fruit-soy dietary pattern or the Alternative Healthy Eating Index is associated with lower hip fracture risk among Singapore Chinese. J Nutr. 2014 Apr;144(4):511-8.

[4] Langsetmo L, Hanley DA, Prior JC, Barr SI, Anastassiades T, Towheed T, Goltzman D, Morin S, Poliquin S, Kreiger N; CaMos Research Group. Dietary patterns and incident low-trauma fractures in postmenopausal women and men aged ≥ 50 y: a population-based cohort study. Am J Clin Nutr. 2011 Jan;93(1):192-9.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로서, 베지닥터 이사이자 사무국장이다. 현재 선병원 직업환경의학센터(대전 유성구 소재)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관련 서적으로는 공저 [채식이 답이다] , 감수 [무엇을 먹을 것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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