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채식, 자연식물식

건강한 채식, 자연식물식

진료실에서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지방간, 비만, 자가면역질환, 건선, 만성피로, 비염, 수면무호흡증, 여드름, 속쓰림, 식도역류 등의 건강문제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권고는 큰 차이가 없다. “고기, 생선 및 어패류, 계란, 우유 및 유제품(치즈, 요구르트), 식용유(튀기거나 볶은 것), 설탕을 먹지 마세요. 말 그대로 밥에 채소반찬만 드시고, 간식으로는 과일은 드세요.” 하지만, 아무리 이렇게 얘기를 해도 사람들은 그저 “고기 좀 덜 먹고, 채소를 많이 먹어라”는 일반적인 조언 정도로 흘려듣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나중에 “하라는 대로 했는데도 좋아진 게 없다”고 불평을 한며, “이젠 제 방식대로 할 겁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 치고 정말 제대로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고, 식용유로 튀기거나 볶은 음식을 먹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저 매일 먹는 이런 음식들의 먹는 양을 조금 줄여서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기나 생선, 계란, 우유, 식용유, 설탕이 없는 음식은 상상도 못한다.

 

채식버전영양학의 오류

그러데 ‘채식인’들도 이런 혼란에 빠져있기는 마찬가지다. ‘채식인’들은 잘못된 영양학의 ‘채식버전’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고기대신 콩고기나 밀고기(콩이나 밀에서 단백질만 추출한 고도로 가공된 식품)를 먹고, 식물성 지방과 설탕이 주성분인 채식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웰빙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고 착각을 한다. 단백질이 부족할까봐 콩이나 두부, 두유를 과도하게 먹는다. 생선기름 대신 필수 지방산인 오메가-3를 섭취하기 위해 들깨와 들기름, 아마씨, 치아씨 등을 챙겨 먹으려 한다. 탄수화물 때문에 살이 찔 수 있으니 밥을 줄이고 견과류 섭취를 늘리기도 한다. 심지어 포화지방 함량이 높은 코코넛오일이 마치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양 챙겨먹거나 입안에 머금고 있기도(일명 ‘오일풀링’) 한다. 하지만 이렇게 ‘웰빙 채식’을 해도 몸은 좋아지지 않는다. 좋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여러 건강문제가 생기기 쉽다. 단백질을 추앙하는 오류투성이 기존 영양학의 ‘채식버전’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건강한 채식을 위해서는 인류의 보편적인 경험에서 도출된 ‘자연식물식’ 영양학의 개념이 필요하다.

 

건강한 채식, 자연식물식

자연식물식(WFPB diet; Whole Food Plant-Based diet)이라는 용어는 <무엇을 먹을 것인가>, <당신이 병드는 이유>의 저자 콜린 캠벨이 1980년대에 영양학자들과 식물성 식품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을 때 처음으로 사용했다. ‘채식’은 동물의 생명에 대한 존중, 환경파괴 및 지구온난화, 인류의 기아에 대한 책임감 등 도덕적, 윤리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일종의 ‘고행’과도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과학적 용어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채식과 식물식은 그 이상의 차이가 있다. 채식은 주로 특정 음식을 먹지 않는 것으로 정의되는 반면, 식물식은 ‘~을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냥 식물성 식품만을 먹는 것을 뜻한다. 배타적인 느낌도 없고, 의미의 전달도 훨씬 분명하다. 그리고 ‘식물’은 가공하지 않은 상태의 식물성 식품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그 자체로 건강한 식단의 내용을 강화한다. 한국에서는 황성수 박사님이 건강한 식사법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채식’은 채소만 먹는다는 인식을 주기 때문에 적당치 않다고 지적하면서, 자연상태의 곡류와 채소, 과일 등 식물성식품을 먹는 식사법으로서 ‘식물식’을 처음 제안했다. 보통 ‘자연식물식’은 동물성식품과 함께 가공된 식물성 식품 즉, 식물의 특정 성분만 추출한 식물성 고기(단백질), 설탕(당분), 과일주스(당분), 식용유(지방), 백미 및 백밀가루(전분) 등을 식단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자연식물식 영양학은 자연상태의 식물성 식품만으로 영양을 공급하는 영양학을 뜻한다.

 

자연식물식의 원칙

자연식물식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우선 식품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것이 자연상태에 가깝고, 어떤 것이 동물성 식품인지 알아야 건강하게 식단을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 1>를 보면 식품이 ⓵자연상태 식물성 식품, ⓶자연상태에서 약간 가공된 식물성 식품, ⓷좀 더 가공된 식물성 식품, ⓸고도 가공식품, ⓹동물성 식품 등 5가지의 종류로 구분되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구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특히 ‘⓵자연상태 식물성 식품’과 ‘⓸고도 가공식품’, ‘⓹동물성 식품’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⓵자연상태 식물성 식품’은 밭이나 나무에서 바로 얻을 수 있는 식품들을 뜻한다. 식물의 잎, 줄기, 꽃, 열매, 통곡물 등이 ‘자연상태 식물성 식품’에 해당된다. 반면 ‘⓸고도 가공식품’은 식물성 식품에서 특정 성분만 추출한 것을 뜻한다. 100% 지방인 식용유(들기름, 참기름, 올리브유 포함), 100% 당분인 설탕 및 기타 시럽류 등이 ‘고도 가공식품’에 속한다. ‘⓹동물성 식품’은 살아있는 모든 동물들로부터 나온 식품들을 뜻한다. 우유, 요구르트, 치즈, 계란, 닭가슴살, 생선 등 소위 건강에 좋거나 다이어트에 좋다고 소문난 것들도 동물성식품이다. 나머지 ‘⓶약간 가공된 식물성 식품’, ‘⓷좀 더 가공된 식물성 식품’은 ‘자연상태 식물성 식품’에서 껍질을 벗기거나 가루를 내거나 해서 가공이 된 음식들을 뜻하며, 가공된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통곡물을 가루를 내거나, 껍질만 벗긴 것은 ‘약간 가공’된 것인데, 껍질을 벗겨서 가루까지 내면 ‘좀 더 가공된’ 식품인 것이다. 과일도 껍질 채 통째로 갈면 ‘약간 가공’된 것인데, 식이섬유를 제거해 즙을 내면 ‘좀 더 가공’된 것이다. 물론 아무리 ‘자연상태의 식물성 식품’일지라도 여기에 ‘고도 가공식품’을 첨가하면 첨가한 정도에 따라 그 급이 ‘⓸고도 가공식품’까지 낮아질 수 있다.

 

자연식물식 식단의 구성

식품의 종류를 구분할 수 있다면 이제 식단을 구성하는 일만 남았다. 식단은 될 수 있으면 ‘⓵자연상태 식물성 식품’으로만 구성하는 것이 좋고, 불가피한 경우 ⓶, ⓷번 정도의 가공된 식품은 포함할 수 있다. 하지만, ‘⓸고도 가공식품’과, ‘⓹동물성 식품’은 최대한 식단에서 배제하는 것이 좋고, ‘⓸고도 가공식품’인 식용유와 설탕, 식물성 고기류는 최소한으로 첨가하거나, 최대한 드물게, 최대한 소량 섭취하는 것이 좋다. 많은 채식 빵들은 설사 현미나 통밀이 주원료라 하더라도 설탕과 식물성 지방(식물성 지방)이 과도하게 첨가되어 있어 건강한 빵이라 말하기 어렵다. 설탕이나 기름이 과하게 첨가된 빵은 아무리 몸에 좋은 허브나 약초 성분이 들어간다 하더라도 결코 건강한 빵이 될 수 없고, ‘고도 가공식품’일 수밖에 없다.

 

이제 자연식물식을 할 때

이제 한국에서도 정크푸드를 허용하는 채식을 대체할 새로운 개념과 용어가 필요하다. ‘자연식물식’이 그 대안일 수 있다. 수많은 환경주의자들이 환경을 위해 헌신하면서, 자신의 몸은 설탕과 식용유 범벅의 가공된 음식으로 파괴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숭고한 가치를 위해 완고하게 채식 혹은 채식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경우가 많다. 아무리 식단에서 동물성 식품을 배제하더라도 설탕과 식용유, 과도한 단백질(식물성 고기, 단백질 쉐이크 등)을 먹으면 몸은 병들 수밖에 없다.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병들면 그 가치도 이 사회에서 시들어버릴 수밖에 없다. 건강의 희생을 ‘고행’으로 감수할 필요는 절대 없다. 얼마든지 더 건강한 채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연식물식’으로 자신의 건강도 챙기고, 채식이 추구하는 모든 가치를 똑같이 추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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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 건강을 위한 식품의 분류

그림 1 . 건강을 위한 식품의 분류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로서, 베지닥터 이사이자 사무국장이다. 현재 선병원 직업환경의학센터(대전 유성구 소재)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관련 서적으로는 공저 [채식이 답이다] , 감수 [무엇을 먹을 것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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