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히 오래 달리는 삶, 여전히 내 인생은 완성중이다.

건강히 오래 달리는 삶, 여전히 내 인생은 완성중이다.

건강히 오래 달리는 삶, 여전히 내 인생은 완성중이다.

-삼육서울병원 생활의학연구소장 박종기

 

인생은 정말 예측할 수가 없다. 가령 하나의 예술작품이 완성되기까지 무수히 많은 과정을 거치듯, 인간의 삶 역시 숱한 과정을 거치며 색깔을 입히고 또 입힌다. 어쩌면 인생은 예술인 것이다. 인간 자체가 예술이 된다. 각자가 자신 인생작품 작가가 되어 일생을 살고 작품을 남긴다. 오직 스스로 작업해야만 완성이 되는 이 예술작품은 꽤 긴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엄청난 지구력이 필요하다.
일생에 필요한 지구력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자꾸만 생각해보게 된다. 예측 불가한 변화의 시간을 수없이 거친 한 예술작품을 만나고 나서부터 말이다.

삼육서울병원 앞 소박한 채식식당. 의사가운도 채 벗지 못하고 급히 약속장소에 나온 그였지만,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어 보였다. 가운 앞 포켓에 가지런히 꽂아둔 볼펜, 자리에 앉아 차분히 건네었던 명함, 흔들림 없이 낯선 이를 마주하는 당당한 눈빛. 그 흐트러짐 없는 분위기와, 버섯전골이 어떻겠냐며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환히 웃던 소박한 풍김은 묘하게 잘 어우러져 있었다. 삼육서울병원 박종기 생활의학연구소장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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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학, 신학, 교육학을 거쳐 의사가 되기까지…

“채식 오래됐어요. 50년도 넘었어요.”

자연스레 채식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흔들림 없이 채식을 할 수 있었던 의지를 물으니, 그것이 곧 80년 인생을 되짚어보는 순간으로 돌아왔다.

“제가 시골에서 자랐어요. 전북 정읍, 그 쪽에서 자랐는데 어려서 몸이 약했어요. 특별히 배탈이 자꾸 났어요. 어머니가 업고 자주 밤을 새우고 그런 기억이 나거든요. 학교 다닐 때도 주변에서 쟤는 몸이 건강치 않다. 늘 아파한다. 그렇게 살다가 대학을 서울로 왔어요. 1958년 성균관대학교 약학과에 입학 했어요.”

처음엔 약학을 공부했다. 그러다 방학 때 우연히 교회에서 성경연구모임을 하게 되었고, 신앙에 눈을 뜬 계기로 인생의 전환을 맞이했다. 1년 만에 약학을 중단하고 1959년 돌연 삼육대학교 신학과로 몸을 던진 것이다. 집에서 반대도 많이 했었다. 지원이 끊겨 혼자 돈을 벌고 공부하는 힘든 시간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와 함께 건강도 큰 변화를 겪게 된다.

“그러니까 그 학교는 채식을 하는 곳이에요. 고기가 없어요. 거기서 식사가 완전히 바뀐 거죠. 1959년도부터 말이에요. 기숙사 생활을 했고, 자동적으로 내 몸이 건강해져버렸어요. 그 전까지도 몸이 좋진 않았는데, 3년 동안 거기서 채식을 하면서 몸이 아주 건강해졌어요. 그게 지금까지도 습관이 된 거죠.”

이후 1965년 군 제대 후 남은 학업을 마치며 졸업과 동시에 또 다른 변화를 기꺼이 맞이했다. 선교사였던 학교 총장이 삼육 중·고등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칠 교사 양성을 위해 제의한 장학금을 받고 교육학 공부를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곧바로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심리학 공부를 했다. 1965년도, 그 때는 결혼을 한 시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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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였던 아내가 1970년도에 미국에 들어가고, 그는 딸 둘과 함께 1972년 4월에 아내를 따라 미국에 가게 된다. 한국에서 다 마치지 못한 교육심리학을 공부하려다 전향하여 특수교육을 공부하고 자격증도 얻게 되었는데, 공부를 마치고 나니 타국에서 일할 자리 얻기가 쉽지 않았다. 난항을 겪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정신병원의 상담사로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이럴 바엔 아예 의학을 제대로 공부해 보는 것이 좋겠다는 결심이 선 것이다.
뉴욕대학교 의대에서 처음 입학상담을 받았다. 만만치 않았다. 외국인이라는 이유, 그리고 30세가 이미 넘은 나이도 불리하게 적용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가능성이 없고 포기하라는 말까지 들었다. 의학을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은 모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의예과에 입학하여 미적분부터 물리학까지 새롭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돌고 돌아 다시 시작이었던 것이다. 1977년도, 그의 나이 38살이었다.

무사히 공부를 마치고 인턴까지 마친 후 가족들이 있는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병원을 개업하고 자리를 잡아 생활하며 아이도 넷이 되었다. 공부하는 동안 가족들과 떨어져 있었지만 그는 남편으로써 아버지로써 가족들에게 인생의 충분한 본보기가 되어줄 수 있는 존재였다. 자녀들에 이어 손자세대까지 의학을 공부하게 된 시작이 바로 그의 에너지에서 나온 것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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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로의 확산을 꿈꾸는 채식운동

그가 다시 한국에 돌아온 것은 2002년 2월이다. 2001년 7월에 개원한 에덴요양병원의 초창기 시절부터 함께하기 위해서였다. 진료시스템부터 채식으로 구성된 환자식단까지 차근차근 해나갔다. 다시 처음이었다.

“언제라도 시작하면 그 것이 반입니다. 나는 에덴병원에 오면서 그러니까 16년 되었네요. 내가 그 때 63세였던가. 미국 병원 접고 그 때 수입의 10분의 1을 여기 와서 받았어요. 집사람이랑도 얘기를 많이 했었죠. 그 사람이 기특한 것은 어차피 내가 말을 안들을 것 같으니까 혼자 있는 김에 공부를 하자 마음먹었던 거 에요. 미국 음대에 들어가 첼로를 전공했어요. 69세인가 70세에 입학했을 거 에요. 공부는 언제 해야 된다 그런 게 없어요. 평생교육이죠. 남편 없는 동안에 공부 열심히 해서 학사를 하나 땄어요. 나한테 고맙다 그러더라고요. 남편이 없으니 자기가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고.”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도 가족 없이 혼자였다. 그 시간들을 긍정적이고 생산적으로 버텨낸 아내의 의지와 그의 의지가 영락없이 부부라는 증명을 하는 셈이었다. 그리고 그는 또 하나의 새로운 도전과 시작을 앞두고 있다. 아직 20년 일할 계획과 목표를 두고 활동을 하고 있다는 박종기 소장의 또 다른 시작은 미국 땅에서의 채식 실버타운이다.

“큰일이죠. 앞으로 큰일을 하기 위한 경험이다 생각하고 가는 거 에요. 사실은 머리도 새하얀 나이든 사람이 혼자서 뭘 할 수 있겠느냐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래서 가족들과도 상의를 많이 했어요. 실버타운에 돈을 내고 들어오는 사람이 오래 산다면 몇 십 년은 살 텐데… 그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오래도록 함께 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졌죠. 하나의 좋은 전통을 세우자. 대를 이어가면서 프로젝트를 한다는 거 에요. 그리고 이러한 채식운동의 파장이 미국 안에만 미치지 않고 중국으로 인도로 베트남으로… 세계로 뻗어나갈 계획이에요.”

올해로 베지닥터는 4년차가 되었다. 창립총회를 하기 훨씬 전부터 단체이름 짓는 것부터 시작해서 채식운동의 힘을 모으기 위해 만난 6명의 의사들. 뭐라도 해보자고 만나기 시작하여 지금껏 이어져 왔다. 박종기 소장은 자신 있었다. 채식으로 인해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자신의 몸으로 증명하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우리가 먹는 것으로 구성되는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몸을 구성하는 재료를 채식으로 하면 몇 년에 걸쳐서 몸은 확실히 변화해요. 결국 이 영향은 이미 병을 앓고 있는 사람보다는, 병을 아직 앓지 않은 사람들이 더 젊었을 때 시작하고 바꿔야 더 좋다는 거죠. 그 때에 식사를 어떻게 하느냐가 후에 건강을 좌우하니까요. 치료책보다는 예방차원의 운동을 베지닥터가 꾸준히 했으면 좋겠어요. 환자 몇 사람 치료하는 것도 좋지만, 100세 시대라고 하잖아요. 의학이 발달하니까 수명은 길어지기 마련이거든요. 말년을 어떻게 오래 사느냐는 중요해요. 아파서 고생하면서 수명을 연장하느냐, 건강하게 일하면서 봉사하며 사느냐…”

아픈 곳 없이 여전히 활동계획을 세운다는 박종기 소장의 삶 이야기는, 알 수 없는 인생에서 느끼는 막연한 두려움을 떨치고 뚜벅뚜벅 걸어 나갈 수 있는 용기가 된다. 끝까지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해답을 찾은 것 같기도 하다. 그의 인생작품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여 아직도 완성중이다.

“난 정신적으로 늙지 않았어요. 계속 앞을 보고 나아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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